코로나 후 '수면관광' 시장 급성장… '슬립테크' 발전과 시너지 서양권에서는 이미 대중화… 수면 용품 넘어 과학·치료 영역으로
잘 먹고 잘 자기 위해 떠나는 '수면 관광(Sleep Tourism)'이 미국 등 해외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수면 관광은 기존에 잘 알려진 '웰니스 관광(Wellness Tourism)'의 한 분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의 형태는 지역의 유명한 랜드마크나 역사적 명소, 멋진 건축물을 관람하며 음식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면 관광은 지금까지 관광숙박산업에서 잘 고려되지 않았던 '수면의 질'을 중점으로 오롯이 휴식과 회복에 집중된 여행 형태다.
미국수면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임상수면학회저널(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은 성인 2,500명을 조사한 결과 40%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면의 질·시간이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자택근무와 실내활동 위주의 라이프스타일은 수면 패턴을 변화시키고 높은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코로나 블루까지 가세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렸다. 사실 코로나는 수면 관광이 성장하게 되는 발단이 됐을 뿐이지 수면 부족·장애는 만국 공통의 고질적 문제다. 현대인을 위한 각종 수면용품, 건강 상품 등이 등장하면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수면과 경제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오랫동안 질 낮은 수면을 취하게 되면 비만이나 심장 질환, 면역력 저하, 우울증, 암과 같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직·간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면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고 수면 관광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과거의 여행은 빠듯한 일정 속에 더 많은 활동을 하기 위하여 수면 시간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호캉스, 식도락, 자연 유람 등 온전한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웰니스 여행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면 관광은 개인의 보다 나은 삶과 건강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수있다.
이런 수면 관광 트렌드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많이 활성화 됐다고 볼수 없으나 몇몇 호텔, 리조트 등이 관광객 숙면에 최적화된 객실을 꾸미고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수면의 중요성을 점차 인식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면 관광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 파크 하얏트 뉴욕(Park Hyatt New York)은 혁신적인 슬립 테크를 도입한 수면 회복 패키지를 오픈했다. 이곳에는 AI 수면 기술을 연구하는 브라이트(Bryte)와 협력·개발한 AI 매트리스를 설치해 놓았다.
AI 매트리스란 개인 체형에 맞게 매트리스 밀착력이 조절되며 수면 중 옆으로 돌아눕거나 엎드리는 등 모션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압력을 바꿔주고 온도까지 조절해준다. 앱과 연동해 원하는 음악에 따라 매트리스 코어가 움직이며 온몸을 이완시켜주는 기능도 있다. 최적화된 셋팅 값은 프로필에 저장돼 재방문시에도 다시 적용된다.
영국 런던 벨몬드 카도간 호텔은 전문 치료사와 수면 컨시어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먼저 질문지를 통해 고객의 전반적인 수면 상태를 파악한후 그것을 바탕으로 객실 내에 맞춤형 용품을 배치한다. 원한다면 직접 수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수면 유도 최면 테러피를 신청할 수도 있다. 또 런던 최초의 수면 호텔인 제드웰(Zedwell)의 객실은 창문을 없애고 혁신적인 방음시설과 공기정화 시스템으로 숙면을 유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파크로쉬 리조트웰니스에서 숙면을 테마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파크로쉬는 숙면을 포함한 각종 웰니스를 연구하는 '웰니스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그중에는 숙면만을 연구하는 '숙암랩'도 존재한다. 숙암랩에서는 개인 척추 상태·스트레스 등을 측정해 맞춤형 숙면법을 제시한다. 모 침대 제조사와 협업, 다양한 침구를 구비해 놓고 있어 체형에 맞는 경도의 매트리스·토퍼를 찾을 수 있다. 또 루프탑에는 전문적인 코치와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반신욕도 할 수 있다. 이 리조트도 앞서 언급한 파크 하얏트 뉴욕처럼 고객의 상태를 기록해두고 재방문시 최적의 침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코오롱 계열 호텔&리조트와 호텔 포코 성수는 독일의 슬립테크 기업인 엠마 매트리스와 협업해 객실을 조성, 개인 수면 습관이나 취향에 따라 편안한 수면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매트리스는 고밀도 메모리폼을 사용해 신체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다. 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슬립테크 기업인 허니냅스와 수면 솔루션 패키지를 개발, 고객의 수면 건강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침대에서 수면을 취하게 되면 생체 정보가 수집되고 이 정보를 분석한 상태 리포트는 전용 모바일앱을 통해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매트리스·이불 등을 판매하던 수면 용품 시장은 크게 확대돼 현재는 '슬립테크(수면을 돕는 과학·기술)' 영역까지 확장됐고, 단순히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질환의 완화를 돕는 치료의 영역이기도 하다. 수면 상태를 측정해주는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애플, 삼성 등 많은 기업에서 슬립테크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수면 관광 트렌드는 이러한 슬립테크의 발달과 맞물려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대규모 비즈니스 호텔이나 특급호텔처럼 프로모션·패키지를 구비하기 어려운 중소형호텔의 경우에도 슬립테크를 활용한 마켓팅 전략은 주효할 것으로 보인다. 거창한 테마룸이나 조식 등이 없어도 '숙박'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아 '탁월한 수면 경험'이라는 콘셉트를 가져오기 부담이 없다.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미 수면 관광이라는 개념이 잡힌 서구권 고객들의 경우 충분히 흥미로운 프로모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도 체력 소비가 많은 여행보다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이후 여행 트렌드는 단체관광에서 개별자유관광으로, 유명하고 대중적인 여행지 탐방에서 자신만의 개성있는 관광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관광에서 힐링과 회복이 중심이 되는 웰니스·수면 관광으로, 좀 더 프라이빗하고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급성장 중인 수면 관광시장이 국내 관광숙박산업의 미래 먹거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