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에 숙박업 경영자 400여명이 모인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현장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행사는 명확하게 관광숙박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주제의 토론회였다. 하지만 400여명이 참석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현장에는 50여명도 보이지 않았고, 그 가운데 숙박업 경영자는 20여명에 불과했다. 토론회는 관광숙박산업의 미래를 조명하는 거창한 주제였지만, 야놀자와 여기어때와 같은 숙박예약앱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집중됐다.
주제도 좋고 국회에서 관광숙박산업을 조명한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행사의 커리큘럼이 이상했다. 그동안 국회에 출입해 간담회, 기자회견, 토론회를 취재한 경험만 백여회 이상이지만, 보좌관이 마이크를 잡고 연사로 나선 행사를 경험한 적이 없다. 보좌관이 모시는 국회의원조차 행사 중간에 자리를 떠났다. 현장은 말 그대로 국회와 관련된 사람이 보좌관 1명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날 현장에 모인 숙박업 경영자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던 것일까?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채용한 직원이다.
유능한 보좌관이나 비서관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이직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국회 관계자에게 관광숙박산업의 문제점을 호소한다는 점 자체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국회에 책임 있는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전달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현장을 보고 느낀 솔직한 심정은 모두가 아마추어로 느껴졌다. 관광숙박산업은 이날 행사를 통해 무슨 실익을 얻은 것일까? 알고 보니 신규 숙박예약앱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 한 곳이 주최한 것이었고, 이 업체가 토론회 이후 만든 오픈채팅방은 어쩌다보니 관광숙박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픈채팅방이 됐다.
토론회 이후에는 대규모 집회도 개최했다. 세종정부청사를 찾아 숙박예약앱의 문제점을 해결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숙박예약앱을 준비하는 업체가 숙박예약앱 규탄 집회를 주최하다니. 그렇다. 이것은 공익 마케팅이다. 동시에 데자뷰도 느껴졌다. 수년 전 이와 비슷한 공익 마케팅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숙박업 경영자들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네이버 카페에서 커뮤니티가 하나 등장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조금 움직임이 이상했다. 협회의 역할을 바라는 회원들이 많았고, 운영진은 실제 협회의 역할을 자처하며 협회 설립까지 추진하려고 했다.
그동안 무수한 협회가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 왔던 경험이 동물적으로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왜냐하면 한 산업에서 역량이 비슷한 규모의 협회가 양립하면 목소리가 둘로 쪼개지고 산업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비방이 난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해당 산업의 정치력과 협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사양화의 길을 걷는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는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업체가 협회를 자처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십수년을 자영업·소상공인 계통에서 기자생활을 해 왔지만, 이러한 사례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사실 협회를 자처하는 업체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산업을 대표하는 기성세대에 염증을 느끼는 산업 구성원들이 많고, 이윤을 추구하는 업체라는 사실이 뻔히 보이더라도 나 대신 선봉에서 협회 역할을 대신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업체는 한도 끝도 없이 희생만 할 수는 없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데, 협회의 역할을 자처하다 파산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될 리가 없는 상상이고, 기대감을 갖는 것 자체가 희망고문이다.
업체는 본인들의 사업 성장을 위해 숙박업 경영자를 희망고문하고, 숙박업 경영자는 이러한 업체에 희생을 강요하니. 동상이몽이자 불협화음이다.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염증을 느끼는 협회를 찾아가 잔다르크가 되는 결정이 훨씬 빠르고 가슴 화끈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익 마케팅은 결국 마케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