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OTA(온라인여행사)의 환불불가 숙박예약 방식을 시정하라며 내린 명령이 법원에서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환불불가 조항의 경우 소비자와 숙박시설의 계약이기 때문에, 이를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초 공정위는 부킹닷컴이 숙박예약 고객이 예약을 취소할 경우 숙박예정일까지 남은 기간과 상관없이 숙박요금 전체를 취소 위약금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약관조항이 고객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약관이라며, 지난 2017년 11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킹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등을 대상으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익스피디아와 호텔스닷컴은 공정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약관을 수정했지만, 부킹닷컴과 아고다는 이에 응하지 않고 시정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판단이 최근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창형)에 배정되어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부당하다며, 부킹닷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에서 판단한 주요 근거는 숙박예약 플랫폼이 직접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중개플랫폼에 불과하기 때문에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부킹닷컴은 숙박사업자의 시설 정보등록과정에서 이를 바르게 입력했는지 여부를 검토할 뿐이라며, 숙박시설에서는 숙박조건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그 내용대로 숙박상품이 부킹닷컴에 게시되므로 환불불가 조항을 포함한 숙박조건도 모두 숙박시설에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부킹닷컴은 숙박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기업일 뿐, 숙박계약에 있어 어느 한쪽의 당사자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부는 소비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다는 공정위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불불가 상품은 환불가능사품과 별개로 취급되는 독립적인 숙박상품이라며, 환불가능상품과 비교했을 대 숙박요금이 더 저렴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환불불가상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환불이 가능한 여러 상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세계적인 숙박예약플랫폼 사업자인 부킹닷컴에 적용될 경우 다른 국가의 고객들에게 환불불가 조건으로 저가에 제공되는 숙박상품이 우리나라 고객은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환불불가라도 숙박요금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의 선택권을 침해해 고객 후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전체 숙박업 경영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부킹닷컴 등 숙박예약 플랫폼에 국한된 법원의 판단이지만, 환불불가의 저렴한 객실상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한 이후, 이를 취소하려는 고객과의 분쟁에서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환불불가 상품으로만 객실을 판매할 경우에는 고객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어 정상요금의 환불가능객실과 저렴한 요금의 환불불가 상품을 동시에 등록해 운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공정위의 입장에서는 소관위의 유권해석이 잘못됐다는 판단이기 때문에 오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 5월 22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를 심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시작하며, ‘온라인 플랫폼 분야 심사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TF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단을 포함해 플랫폼사업자에 대한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규제 심사안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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